🗓️ 2023. 0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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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처(去處)

이미 갔거나 현재 가거나 미래에 갈 곳

실은 늦은 8월 회고다.
거쳐온 곳과 잠시 멈춰선 곳, 그리고 나아갈 곳을 적어두자.

어딘가를 떠날 땐 늘 크고 작은 이유가 있는 법이다.

정신적 스트레스가 신체적 부하로 넘어오는 게 여실히 느껴지던 지난 2년이었다.

작년 5월과 올해 5월에 몸이 크게 상했었는데
두 시기 모두 신기하게도 3개월간 기침이 멈추질 않았었다.
질병에 걸렸다기보다 심인성으로 인한 기침이었고,
서비스를 리뉴얼하여 런칭했던 작년 5월엔 기침이 너무 심해서 갈비뼈에 실금이 가기도 했다.
(진단받았을 때 기침을 너무 많이 하면 이런 경우도 있다는 말을 들어서 그와중에 신기하더라.)

말을 하든 안 하든 기침이 지나치게 잦아서 사무실에 있기도 어려웠고 업무에도 지장이 있었다.
이렇게 지내다간 내년에도, 그 다음 해에도 매번 같은 병치레를 하겠구나싶었다.
완전히 낫기 위해선 한두 달의 휴식이 아니라 온전한 쉼이 필요했다.
그래서 공동대표이자 공동창업자, 그리고 CTO였던 이전 회사에서의 퇴직을 결정했다.

스트레스의 주된 원인은 책임감이었다.
무자본으로 창업했던 회사였기에 자체 서비스를 개발/운영하는 회사임에도 개발자를 채용할 여력이 되질 않았다.
그건 괜찮았다. 내가 더 갈리면 될 일이니까.
그래서 개발자보다 영업사원과 디자이너, 기획자와 MD를 먼저 채용했었다.

문제는 '개발자가 나뿐이라 회사의 서비스를 혼자 개발'하면서도 그들의 '인건비를 위해 외주 개발'을 해야 했던 점이다.
첫 번째와 두 번째를 따로 떼어놔도 각각 큰 문제인데 그걸 동시에, 그것도 혼자 해내야 했다.

앱 서비스를 운영했기때문에 모바일 앱, 서비스 웹페이지, 랜딩페이지, 관리자 페이지, 자동화 시스템 등이 필요했는데
나를 제외하고선 서비스 기획 경험이 있는 사람이 팀내에 없어서 서비스 기획과 온라인 마케팅 집행도 내 책임이었다.
그 업무들을 수행해가면서도 공동 대표였으니 회사 방향성도 고민해야 했고, 회사에 돈이 없으니 외주 개발로라도 돈을 벌어와야 했다.
한 마디로 공동대표, CTO, 서비스 기획자, PO를 모두 혼자 겸해야 했다.
그렇게 몸이 상했다.

내가 더 갈리면 팀원들의 생계를 책임질 수 있고 회사가 모든 면에서 나아질 수 있다.
이 다짐으로 2년간 버텨올 수 있었는데 버티는 동안 번갈아가며 했던 두 가지 생각이 있었다.

  1. 이것 이상으로 모든 걸 쏟아낼 수 있는 시기가 다시 올까?
    대기업에 들어가더라도 이만큼 쏟아낼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스타트업이나 목적조직으로 구성된 회사가 아니라면 어렵지 않을까?

  2. 이보다 더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있올까?
    다른 이의 생계가 내 성과에 달려있단 사실은 느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압박이다.
    세상의 모든 창업자들, 자영업자들을 진심으로 존경하게 됐다.
    그래서인지 한편으론 아무리 업무적 스트레스가 극심해도 타인의 생계를 책임지는 것만할까싶더라.
    직원으로 회사에서 일하게 된다면 업무만 신경쓰면 되니 남들보다 훨씬 스트레스가 덜하지 않을까?

여담으로 내 고초를 먼저 알아주고 짐을 덜어주었던 디자이너분은 비슷한 시기에 퇴사하여 네카라쿠배당토로 얼마전 이직했다.
입사추천을 받고 이직하신 건데, 역시 어디서든 최선을 다하는 이는 좋은 곳에서 눈여겨보는 법이다.

디자이너분이 내 생각이 난다며 보내주셨던 글
지친 와중에 큰 힘이 됐었다디자이너분이 내 생각이 난다며 보내주셨던 글 지친 와중에 큰 힘이 됐었다

휴식, 휴식, 휴식?

그렇게 퇴사를 하고 한 달 남짓 푹 쉬었다...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 러브콜이 들어왔던 회사가 있어서 공부를 미리 하고 있었다.
공부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내겐 스트레스 범주가 아니기도 하고 오히려 너무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스트레스로 다가오더라.
입사 즉시 일을 할 수 있게 준비해두는 게 예의이자 도리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그래서 쉬는 동안 그간 할 수 없었던, 오히려 죄책감이 들던 개발 공부를 맘편히 했다.
창업했던 회사에선 내 기술적 호기심이 회사의 정체를 야기한다면 잘라냈어야 했다.
그 시간에 비즈니스 모델이나 서비스 기획, 회사 운영 등을 공부해야 팀 차원의 질적 향상이 생기니까.
성능이나 확장성보다 새로운 기능 하나 더 덧붙이는 것, 사내 툴을 만들어 팀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 더 필요한 상황이었다.

쉽게 말해 이 회사에서 필요로 하는 개발자의 핵심역량은

  • 있던 걸 고도화하기 보다 없던 걸 새로 만들 수 있어야 했다(0 to 1).
  • 얼마나 더 빠른 기능을 만드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더 빨리 기능을 만드느냐가 중요했다.

난 회사에 필요한 역량을 명확히 인지했고 그에 맞게 공부하고 그에 맞게 노력해왔다.
정말... 진짜 난 이 세상 어느 누가 와도 그 시기에 내 위치에서 나보다 더 잘 해낼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라 자신한다.
그리고 내 모든 선택과 노력의 방향이 정답이었다고도 생각한다.
이토록 여한이 없을만큼 역할을 잘 수행했지만 아무래도 그 역할 바깥의 역량에 대해선 아쉬움이 생길 수 밖에 없었다.

가장 큰 아쉬움은 엔지니어로서의 내가 많이 희석된 점이었다.
나는 내 객관적인 실력 체크를 위해 코딩 테스트를 볼 때가 있는데, 이번에도 퇴사 후 모기업의 코딩 테스트를 치뤘다.
(물론 기업 입장에선 이 모든 게 리소스이기 때문에 허튼 마음으로 보진 않는다. 채용 과정을 끝까지 성실히 임해서 입사까지하겠단 마음으로 응시한다.)

응시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솔직히 문제 난이도는 어렵지 않았다. 문제 자체도 너무 좋았고 해당 회사에서 바라는 최소한의 요건임이 잘 드러났었다.
오히려 지금 보면 평이하다고 여겨질 정도다.
불합격이란 사실이 아쉽기보다도 스스로에게 짜증이 무척 났었다.
내가 지금 이정도도 바로 생각해내지 못하는 상태구나...

아주 간단한 지식으로 쉽게 풀 수 있는 문제인데, 그동안의 내 감각은 CS지식으로 날카로워진 상태가 아니었다.
지식으로 알고 있더라도 2년간의 코드 관성은 캐싱같은 최적화랑 거리가 먼 상태였다.
그래서 응시가 끝난 뒤 3일간 코드를 돌이켜봤고, 불합격할 구석을 다섯 군데는 찾았었다.
왜 이때 이걸 생각 못했지? 답답해하며 불합격을 예상했고, 실제 결과 역시 불합격이었다.

사실 이것도 엄밀히 말하면 실력문제긴 하다.
시험 다 보고 나서 '아~~ 이거 아는 건데'하고 틀리는 거랑 뭐가 다르겠어. 그것도 실력인데.
내 안에서 엔지니어인 나는 희석되고 메이커인 나는 짙어진 상황이었는데 그 정도가 많이 과했다.
실수도 실력이지만, 관성도 실력이란 걸 깨달았다.

노력과 힘을 들이지 않고도 무언가를 해낼 때 우린 체화됐다고 한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숨쉬듯 할 수 있어야 하는데 내가 해온 당연함과 응시했던 회사에서 바라는 당연함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렇게 엔지니어인 나로 돌아가고 싶단 욕구가 마구 샘솟기 시작했다.
(실제로 학교 연구실에 있었을 때 네카라쿠배당토 코딩 테스트를 합격하기도 했었고)

러브콜

내 상태를 파악하는 동안, 사실은 그 이전부터, 입사 제안이 들어왔었다.
이 곳 역시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은 스타트업이다.

코딩 테스트 결과가 나온 뒤 고민끝에 이 곳을 새로운 거처로 결정했다.
몇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1. 의미있는 일을 한다.
    보안때문에 상세히 말할 순 없지만 의료와 관련된 프로젝트를 수행중이다.
    태생적으로 트래픽이 적을 수밖에 없는 제품이지만, 트래픽이 적더라도 기술로 세상을 더 나아지게 한다면 만드는 의미가 있는 법이다.

  2. 내가 회사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커보였다.
    회사가 생각했을 때도 내가 생각했을 때도 회사에 기여할 수 있는 내 역량이 몹시 커보였고
    내가 합류함으로써 회사가 크게 성장할 수 있음이 느껴졌다.
    자체 서비스를 했던(창업했던) 회사에선 내 메이커적 역량으로 어디까지 회사를 키울 수 있는지 원없이 확인해봤다.
    내 엔지니어적 역량으론 얼마나 키워볼 수 있을까. 그걸 확인해보고 싶었다.
    멋지지 않은가? 작은 회사가 나를 통해 계속 커가는 걸 지켜본다는 게.

  3. 기술에 집중할 수 있다.
    연구실에 있었을 때 미디어와 실시간 통신을 공부했었다.
    특히 사람과 사람을 잇는 기술로 느껴졌던 WebRTC에 매료됐었는데 실제 프로덕트를 만들 수 있는 기회는 없었다.
    만들 거면 기깔나게 설계해서 제대로 만들어 보고 싶었는데 사이드 프로젝트로 하기엔 부담스러웠고,
    연구실을 나오면서 창업을 했기 때문에 지식을 쌓기가 어려웠었다.
    그런데 이번 회사에선 쓸 기회가 생겼다! 기껏 배워왔던 게 늘 아쉬웠는데 반가운 일이었다.
    더불어 AI 모델도 서비스에 적용해 배포해보고 싶었는데 회사 자체가 인공지능이 핵심인지라 그 경험도 할 수 있게 됐다.
    이외에도 시스템을 설계하는 일들이 가득해보여서 설레기 시작했다.
    (30살 이전엔 난 더 넓게 경험해보고 싶다)

아쉬운 건 솔직히 말하면 연봉인데, 이제 막 생긴 회사라 여건이 마련되지 않은지라 연봉은 깎고 대신 지분을 받기로 했다.
입사 제안을 주셨던 대표님께서 이 점을 미안해하시는 것도 알고 그만큼 대우를 해주려고 노력하시는 것도 너무 보여서
사실 처음에 비하면 이젠 크게 문제가 되지 않게 됐다. 내가 일 더 잘 하면 회사가 돈을 더 잘 버는 거고 그럼 그때 더 챙겨가지 뭐.
요런 마인드가 됐다.

새로운 여정에 나서며

업무와는 별개로 이 곳에서 이루고 싶은 것들이 있다.
이전 거처에서 이루지 못했던 것들과 이 곳이기에 이룰 수 있는 것들.

  1. 문서화
    모든 기록을 의미한다.
    팀 내 목표를 얼라인하기 위한 프로젝트 문서화부터 내 개인적인 업무 정리까지.
    그날그날의 업무를 정리해두지 않았더니 왜 그때 이런 결정을 했는지 팀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혼란이 생길 때가 있곤 했다.
    작든 크든 의사록(議事錄)를 남기는 습관을 들이고 싶다.

  2. 인공지능
    인공지능을 잘하고 싶다기보다 잘 써먹어보고 싶다.
    AI 기업에 합류하게 된 만큼 이참에 tensorflow.js도 중간중간 배워보면 어떨까?

  3. 서버 운영
    이 곳에선 시스템을 설계하고 모니터링하는 게 핵심 업무 중 하나다.
    어느 곳에서건 필요한 역량인 APM, 로깅 등의 서버 운영 방식을 체득해두고 싶다.
    안 그래도 정~말 잘 하고 싶었는데 늘 아쉬웠던 역량 중 하나였다.

내 선택을 옳게 만들기

배민에서 CTO로 임하셨고 현재는 교육자로 활동중이신 영한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선택지의 나음보다 내 선택을 옳게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 말을 처음 듣고선 지난 2년의 기억이 모두 스쳐지나갔다.
창업한 게 후회되지 않았던 건 내가 옳은 선택으로 만들었기 때문이었구나.
실제로 코딩 테스트에 떨어졌을 때도 짜증났을 뿐이지 후회되진 않았다.

이번 선택도 옳은 선택으로 만들어나가보려한다.
지금이 아니면 선택할 수 없는 일에 도전해보자.
굴지의 기업들은 언제든 두드릴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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